감성 싱어송라이터 듀오 모든(Moden)의 ‘준 박’이 국악으로 대 변신을 꿈꾼다. 한 소녀를 사모하는 지고지순한 선비가 되어 순백한 정악을 노래하고, ‘이 우’의 일렉트로니컬 사운드와 국악기의 절묘한 조우가 조선 시대로 이끈다.
본격 조선발라드 골든디스크 [이우 - ‘소녀야 이리오너라’]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
일지춘심은 소쩍새가 알까마는
사랑도 병인 듯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병,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나 처절한가, 저 시조 속 화자의 사랑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로 여의도와 홍대근처 카페에서 한가로이 앉은 채로,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을 읽으며, 주변 여대생들을 결코 의식하지 않고, 서구 근대 사상을 탐독하며 오후 일과를 시작하는 젊은 뮤지션 ‘준 박’에 있다. 사실 그는 5년 전 2010년에 데뷔한 감성 싱어송라이터 듀오 그룹인 ‘모든(Moden)’에서 작곡과 메인 보컬을 담당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뮤지션이다. 그런 그가 불현듯이 조선 중기(영조代)의 선비가 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것도 사랑에 빠져 목메는 선비,
‘준 박’은 ‘깊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요즘의 여느 젊은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라고 첫 운을 떼었다. 사서와 오경을 외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은 오늘날 취업 준비와 스펙을 쌓고 있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모습이듯이, 현대시대의 흔한 사랑과 연애 이야기들도 과거와 상통한다는 가설을 설립하면서, 본 프로젝트의 당위성을 견고히 확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팝 뮤직 필드에서 기반을 두고 활동했던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이 우’는 조선 시대라는 공간과 국악, 굿거리와 한국춤 등을 단지 한시적 역사 무대로만 제한하여 보지 말고, 지금 이 시대의 정신을 뚜렷하게 관통하고 있는 수많은 장르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사뭇 단호한 어조로 요청한다. 덧붙여 그는 ‘무엇인가와 결합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그 다른 장르에 대한 철저한 근원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고 뜬금없이 필자를 훈계한다.
덩달아 ‘준 박’은 ‘서사적 연결 구조를 지닌 탈 가시적 드라마’ 라며 어려운 단어를 써가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가. 결국 필자는 음악을 재생시켜 놓고서 이들의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트랙 1번 ‘연모지악(戀慕之樂) 중 타령’이라.. 제목부터 전형적인 정악 스타일이다. 청자들의 귀를 현혹해야 하는 인트로 곡으로서 정악은 다소 도발적이다.
작곡가는 ‘정악이 가진 절제와 청초함의 미학은 ’주자 성리학‘을 신봉하던 조선 선비의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진지하고도 달콤한 선율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장단에 맞춰 몸짓하는 작중 소녀의 순결미와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다’라 말한다. 여러 분야의 팝 뮤직 필드에 종사했던 뮤지션들답게 많은 양의 신스 사운드와 능숙한 코드웍, 그리고 샘플링 비트를 다루는 기술엔 거침이 없다.
타이틀곡인 2번 트랙 ‘소녀야 이리 오너라’ 는 장구의 굿거리 장단으로 시작하는 달콤한 멜로디의 발라드 넘버이다. 고정된 템포 속에서 다양한 장단들을 삽입하려는 흔적이 엿보이고, 후렴구엔 슬로우 록 리듬으로 변경되며, 안타까운 남녀의 빠두데가 연상된다.
이어서 3번 트랙이야 말로, 이 그룹 ‘이 우’가 추구하는 음악적 사상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트랙이라 소개했다. 제목인 ‘연서’는 그냥 연애편지란 뜻이다. 현대 젊은이가 그러듯이 필연인 듯 운명인 듯 누구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수줍게 고백을 하며, 유치찬란한 편지(문자)를 보내는 모습, 이것이 보편적인 인생사의 한 단면이라는 것, 그리고 그 옛날 우리 조상들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연결되는 동일한 삶의 양태들이라는 주장은 이 음악들을 듣고 나니 훨씬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참 오랜만이야^^, 넌 여전하구나.. 하는 일은 잘돼???
18분 남짓한 사운드 트랙 속에 담긴 뮤직드라마 `연락 (連絡)`은 대학 시절에 만난 ‘그 애’ 와의 짧지만 특별했던 사연들을 덤덤하면서 정밀한 사운드 톤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움과 태연함 사이에 있는 미세한 감정들, 막연한 거리에도 단지 친구라는 미명 속에도 미처 숨겨놓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했기 때문일까.. 핸드폰에는 오래 전 지워져 있지만, 아직은 끝의 4자리 정도는 낯익어 하는 번호, 그 번호가 아주 오랜만에 나타났던 그 상황부터가 이 음반의 첫 테이크 scene#01 ‘수신 번호 없음 Inst.’ 씬이다. 어쿠스틱한 피아노 사운드는 아련하고 또 공허한 색으로 그들이 함께 같이 걸었던 동네의 길 구석구석을 채색하고, 녹슬어 보이는 일렉트로니컬 톤은 자꾸만 아득한 과거로의 회귀로 이끄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작 ‘소녀야 이리 오너라’에서 조선시대의 선비가 되어 지고지순의 감정으로 호흡을 맞추던 ‘준 박’ (소속그룹 모든)은 또다시 프로듀서 이 우의 페르소나가 되어 보컬리스트로 등장하고, 대학 동기 결혼식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scene#02 ‘그 애가 올 줄 알았어’의 정서적 인과과정들을 놀랍도록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옛사랑이 있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왔던 ‘그 애’의 소식, 특별할 것 없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더라, 이 정도로나마 간격을 유지하며 만족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간혹 불현듯 집에 가는 길에 버스에서 ‘그 애’를 닮은 사람이 앉아 있을 땐 흠칫 놀라고 옷 매무새를 추스르며 긴장을 하곤 한다. 대부분은 닮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있는 해프닝에 괜스레 마음이 들떠 창 밖 풍경 속을 유심히 살펴보며 놀라운 발견을 찾는다. 마침 버스는 그 애가 사는 동네를 지나친다. scene#03 ‘연락’도 5년 전에 하굣길에 ‘그 애’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는 예전의 ‘나’의 모습을 향해 그대로 돌진한다. 복고스러운 신스 팝을 연상케 하는 신디사이저 오케스트레이션의 향연이 EDM으로 이행되는 과정 속에 지난날의 같은 동네를 공유했던 ‘그 애’와의 여정을 퍽이나 감상적 마이너로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결국 코러스 부분 말미에 ‘그 애’는 작 중 화자를 보며 ‘꼭 한번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애’가 했던 그 마지막 목소리는 여전히 뚜렷한데, 그토록 뚜렷이 남아있기에, 미처 끝내지 못한 여음(餘音)은 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지나치게 차분할 정도로, 긴 호흡으로 감상자들을 애태우며 서서히 페이드아웃 한다.
이제 5년 후 현재다. scene#04 ‘그 애가 올 줄 알았어 Inst’, 결국 ‘그 애’는 이제 곧 다음 달에 결혼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자연스럽게 다들 차례가 오듯이, 순리(順理)인 듯이, 그럴만한 때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화자는 몇 번이나 축하한다고 홀로 읊조렸는지 모른다. 이 부근은 scene#02의 리플라이즈 씬으로서 작중 현재로 돌아오는 지점이다. 그리고 잔향 가득 찬 피아노의 예민한 코드에 맞춰 다시금 화자는 천천히 그 애가 머물던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득한 세월을 가로질러서 과거로 향해가는 시간만큼은 매 번마다 가슴 먹먹한 경험들이다. 그곳엔 언제나 그때의 ‘그들’이 있었다. 급하게 뛰어오느라, 숨이 가득 차서 나무에 손을 대고 있던, 지금보다 훨씬 멍청하지만 순박했던 ‘내’가 있었고, ‘그 애’는 자신의 작은 손으로 따스한 체온을 기꺼이 전달해 준 티 없는 소녀(少女)였다. 그리고 노을과 함께 깊게 저문 저녁은 슬며시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다.
프로듀서 이 우는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도창(導唱)자의 자격으로 ‘준 박’을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청자들은 미리 연출된 공간 속으로 따라 들어오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있다. 트랙마다 서사적 연결 과정의 조밀한 짜임새를 집중하면서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은 곳에 담아 놓은 그런 이야기들, 그것을 꺼내어 봐도 무방하다.
첫사랑이나 옛사랑은 언제나 유치한 법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공감각적 정서들을 사뭇 진지하고 심도 높은 사운드적 언어로 코딩(coding)하는 것을 한번 주목해 볼 만 하다. 또한 이 우의 오랜 음악적 동료이자, 팝페라 그룹 ‘La Boheme’의 작곡가인 ‘정경훈’은 놀라운 감각적 재능으로 편곡, 사운드 프로그래밍과 믹스를 너무 고가(高價)의 가격으로 시도하여 주변 뮤지션들을 놀라게 하였고, ‘그 애’의 역으로 아주 잠시 특별 출연한 ‘김 현민’도 평소 청량한 보이스로 페퍼톤스, 민켄, 엑시트(Exit)등의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던 재원으로서 본 음반을 위해서 왕십리에서 일산까지 택시를 타고 올 정도의 뜨거운 열의를 보여주며 까메오로 활약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일한 리얼 악기로 사운드의 질감을 더해준 첼로는 이화여대 음대에 재학중인 '이 영화'가 연주하였다.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 음반이지만 의외로 참여한 뮤지션들은 이 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돈이 없어서겠지, 부디 다음 음반에는 좀 더 음악성보다 외모로 승부하기를 기원하며, 프리뷰를 마치겠다.
새로운 EP음반(Decade, 2008-2018)으로 컴백한 이 우(서울예대 외래교수)는 국내의 독보적인 리얼리즘 전자 음악 아티스트이자 미학자로 거창하게 활동 중이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이전의 발표된 음악양태와는 사뭇 다른 구조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지난 10여년간 실제로 직접 겪은 실화들을 순도 100퍼센트 그대로 재현해놓기 시작한 것이다. 20분간의 러닝타임속의 세밀한 사운드 디자인은 ‘영상 없는 OST’의 개념을 차용하듯 역설적 시각미를 유발한다. 또한 곳곳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어간 극본들의 향연은 처절하고도 안타까운 그의 실제 연애사를 훔쳐보는 듯해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단편들은 벌써 독자에게 다음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의 임팩트는 매번 가히 충격적이고 은밀하다.
네티즌들의 한줄 평
“신인류의 영원한 화두. 내가 좋아하던 우리반 그때 그 아이는 지금 뭘할까. 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이번 앨범을 다 듣고 난 후, 난 ‘이 우’ 라는 음악가가 지난 시절 얼마나 사랑에 절망하고, 집착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스토커같고 때론 변태스러운 그 집착이 음악으로 투영되어 이리도 아름답고 완전한 곡들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 ID: 멜론먹는남자
“1996년에 상상한 2016년의 음악.
그 미묘한 세계관의 시공간속에서 충격 받다.“ - ID: Kimykimyy
대설주의보: 기상(氣象)주의보 중의 하나. 눈이 아주 많이 내릴 우려가 있을 때 내리는 주의보로써 강설량(降雪量)이 10㎝ 이상으로 예상될 때 발함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실패까지의 사연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가.
여러 개의 시행착오로 얼룩진 지난 20대 일상의 일기장을 문득 꺼내어 본다.
같은 동네의 동갑내기인 진수와 희진,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두 사람의 인연은 고3이였던 2002년 월드컵에서 우습게 시작되어, 그해 겨울눈이 쌓이듯 자연스레 사랑의 감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대입과 재수 그리고 진로라는 힘겨운 삶의 과제에 늘 그렇듯 서로의 감정은 지쳐만 가고, 쓸데없는 오해와 다툼 끝에 흔해 빠진 풋사랑의 이야기는 눈 녹듯 끝이 난다.
오늘 뉴스에서는 대설주의보를 예보한 새벽이다, 어느덧 치열하게 살아왔던 취업 준비생 진수에게 8년 전 희진의 모습이 다시 다가오는데....
이 60분 정도분량의 뮤직드라마 ‘대설주의보’ 는 2002년부터 2010년 까지 8년간의 시간 속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있었던 작가의 실제 자전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뮤지컬 타입의 사운드 트랙이다.
한 소녀(여인)를 두고 이루어지는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루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첫 사랑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어른으로써 성장하게 된다는 평범한 이야기임에 동시에, 스무 살짜리 에게는 마냥 혹독할 수밖에 없는 그 첫사랑의 감정과 혼란들을 ‘대설주의보’라는 일기 예보 형태로 수식하고 묘사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20대라는 의미와 기억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역을 맡은 메인 보컬은 전문 보컬리스트가 어떠한 노래를 가지고 음악적으로 화려한 기교적 해석을 하기 보다는 이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진수)의 처지에 걸맞은 진정한 화자가 되어야 했고, 그 점에 비추어 메인보컬 ‘박기범’은 우리주변의 동네 이웃집 자주 마주치는 흔한 대학생의 이미지를 가진 외모와 함께, 항상 진로와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 다가도 친구의 부름에 마저 않고 피시방을 즐겨 찾는 이 시대의 청년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바로 그런 그의 이미지가 첫사랑에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주인공의 정서와, 작품을 꿰뚫고 있는 주제 의식, 그리고 드라마의 다양한 호흡들을 청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또한 프로듀서이자 프로그래머인 ‘이 우’는 전통적인 악기편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대중 지향적‘ 사운드 대신 독특하면서 다소 과감한 일렉트릭적인 소스와 개성 있는 프로그래밍 기법을 이용하여 다소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에 걸맞은 공간적 성향을 적절하게 연출해 내고 있으며, 특히 이 우는 자신의 배우자를 도와 분리수거를 하고 사이좋게 코러스를 하는 일이 삶의 유일한 낙이라는 바람직한 취미를 가진 만큼 이번 앨범에서도 여김 없이 부부 코러스로써 음악의 양념을 효과 있게 담당하고 있다.
Logos 첫 번째 정규 음반 ‘대설주의보’에서의 첫 장면은 작은 교실과 거기에 서있는 한 소년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소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떠한 자세로 앉아 있는지 혹은 서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시각적 정보는 소리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냥 자기 자신이라고 동일시해도 관계는 없다. 단지 이 소년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도창자의 자격으로 메인 보컬이 청자들을 초대하고 이끌어가는 공간속으로 따라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놓이게 될 그 소년의 상황, 그리고 그것에 대해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 청자 각자는 자신의 처지에 맞춰가며 Logos가 연출해 놓은 공간에서 관객이자 주인공이 되어 실제로 경험하면 되는 것이다.